2011년 11월 08일
환멸을 바라보기
환멸감 자체가 환상 일 수 있다. 꿈 앞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정당화 하는 것일 수 있다.
환멸을 느낄 때는 그것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자위는 아닌지 냉철하게 생각해봐야한다.
by duddnek | 2011/11/08 20:19 | 가치있는 사유 | 트랙백 | 덧글(0)
2011년 07월 23일
사생활

  누군가 허락을 받지 않고 내 서랍을 뒤지는 것은 왜 기분이 나쁠까? 멋대로 가방을 열어서는 안에 뭐가 들어있나 뒤적거리는게 왜 기분 나쁠까? 누군가 내 허락 없이 나를 알려고 하는 것에 왜 거부감이 들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 내가 원할 경우에만 그것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을지 모른다.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란 부끄러운 것, 미숙한 것, 누군가 알게 된다면 나를 훌륭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하거나 어쩌면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내면의 모습일 것이다. 이것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은 누구나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는 것, 더 나아간다면 누구나 부정을 저지르고 산다는 것일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수사관들의 말이 그래서 무시무시한 협박이 되는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쌓아둔 벽을 사생활이라는 말로 모두가 수용해 주는 것은 각자가 가진 어두운 내면에 대한 용인일지 모른다. 내 속에도 검은게 있고 네 속에도 검은게 있으니 이쯤에서 서로 알려고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일지 모른다.

by duddnek | 2011/07/23 13:45 | 가치있는 사유 | 트랙백 | 덧글(0)
2011년 07월 16일
수와 크기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많다, 아주 많다, 엄청나게 많다, 진짜 허벌나게 많다. 그 이상은 감이 잘 안온다. 진짜 허벌나게 많은 것보다 더 많은 게 대체 얼마나 많은 거란 말인가? 그런데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손가락 수 보다 많고 발가락 수까지 합친 것보다도 많아서 얼마나 많은건지 감도 잘 안 오는 만큼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수'라는걸 만들어냈다. 수를 만들고 보니까 진짜 허벌나게 많은 것보다도 훨씬 더 살벌하게 많은 것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진짜 허벌나게 많이 가진 사람이 진짜 허벌나게 많은 것보다도 훨씬 더 살벌하게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부터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 칠일에 겨우 이틀씩 있는 휴일까지 마다해가며 모으고 모아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천문학같은거엔 관심도 없으면서 천문학적인 수치가 쓰여진 옷가지 같은걸 욕망하게 됐다. 불행이 시작된것이다. 얼마나 좋은건지도 모르는걸 갖기 위해서 행복한 주말처럼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 멀리하게 된 것이다.

행복한 삶에 다가가고자 한다면 수를 멀리하면 된다. 삼백육십오일 봉사하면 년에 몇천몇백만원을 받는지, 서른두평 아파트에 놓인 쇼파에 앉는게 아흔 두평 아파트에 놓인 쇼파에 앉는 것 보다 얼마나 안락한지, 모자부터 구두끈까지 도합 이천팔백만원 하는 피복이 오만팔천원 하는 피복보다 얼마나 더 보드라운지 따위를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내 손가락 발가락으로 세어서 거의 다 접힐수 있는 양만 가지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

by duddnek | 2011/07/16 15:47 | 가치있는 사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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