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7일
사랑? 웃기시네.. -영화. 연애의 목적




















사랑? 섹스와 호르몬, 그리고..
-한재림 감독, 강혜정 박혜일 주연의 '연애의 목적'을 보고나서..

  내가 인도로 도망가기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까, 벌써 5년이 지났다. 나는 사랑 따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울부짖었던 것 같다. 사실 울부짖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
다. 그 이전부터 의심스럽게만 바라봤던 사랑에 대한 관점이 몇 가지 일들로 좀더
확실해 진 것뿐이니까. 사춘기는 이미 지나버려서 쪼그만 녀석이 느끼해질 대로 느
끼해져버린 나는, 한창 사랑이라는 욕망에 열이 올랐었다. 눈에 뵈는 게 없었고, 가
치관 같은 건 온통 정신없이 흔들릴 때였으니 거리낌도 없었다. 있는 건 죄다 퍼주
는게 사랑이고, 니껀 다 내거여야 한다는 게 사랑놀음이라는 것에 대한 내 지론이었
다.

  그게 문제였다. 죄다 퍼주려고 했었다는 거. 퍼준다고 해도 그것이 남들 눈에 보
기 좋은 데까지만 이어야지, 나처럼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온갖 욕정, 집착, 소유
욕, 더러운 밑바닥 까지 모두 긁어다 퍼줘 버리면 상대는 질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이야 그땐 어렸으니까 하고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얘기 하지만,
당시에 느꼈던 고통은 정말로 컸었다. 엄마 젖을 빼앗긴 갓난아이가 얼굴이 시뻘게
져서는 잘 가누지도 못하는 목이 뒤로 넘어갈듯 무섭게 울어대는 것처럼, 나도 그렇
게 통곡했었다.

  사랑.. 그런 게 정말 있기나 한걸까..? 내 심장을 미친 듯이 펌프질 해댔고 밤잠
설쳐가며 그대를 위한 글을 쓰게 했던, 온종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환청까
지 들리게 했던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내 신념이 좀더 확고해진 게 고통을 받았던 그 당시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사
랑이라는 감정을 몸서리쳐가며 역겨워 했던 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팠던 감정들
도 애써 더듬어야만 겨우 기억해 낼 수 있을 만큼, 희미하게 기억 속으로 사라져간
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런 아픔 따위는 남이 겪고 있을 땐 코웃음 쳐지는 거였다.
뭘 그렇게 감정에 치우치냐. 니 자신을 똑바로 봐. 감정 따위는 어떻게든 조절할 수
있는 거잖아. 난 그렇게 아파하고 있는 자에게 헛소리를 해댔다. 비열하지.. 하지만
그 순간엔 모른다. 나는 그저 사랑에 불타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 KBS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과학다큐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심리학자,
의사, 정신분석학자, 신경생리학자 등을 중심으로 해서 막 연애를 시작한 20대 커플
수십 쌍을 대상으로 밀착 취재를 하며 그들이 사랑하는 과정을 파헤쳤다. 사랑이라
는 감정이 불탈 때와 식어갈 때 두 기간 동안 MRI로 뇌를 촬영했다. 그리고 그들의
애정행각,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대화내용,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두
기록했다.

결과?

  서로 죽고 못 산다고 호들갑 떨 때는 사랑이 저물어 갈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특
정 뇌 부위가 활성화 되었다. MRI 화면에 활성화된 뇌 부위가 붉은 색으로 표시되
었는데, 절인 순두부 같은 뇌의 자태가 내 눈엔 발정 난 암컷 원숭이의 시뻘건 둔부
처럼 보였다. 특정하게 활성화 된 그 뇌 부위는 모든 커플들에서 동일하게 발견되었
다. 그리고 100일이 지난 후 다시 뇌를 촬영했을 때, 그 특정 부위는 이성을 관장하
는 전두엽 쪽으로 옮겨갔다. 전두엽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만큼 활성
화 되었다.

  매혹적인 행위, 호르몬과 수용기의 작용, 시냅스의 전위. 최대한 자기 종족을 강하
고 튼튼하게 보존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 메커니즘은 나에겐 별로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많은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가임기간이 끝났으면 한시라도 빨리 다른
파트너를 찾는 게 유리하지 않겠는가.

  나를 배꼽잡고 웃게 만들었던 건 절인순두부 같은 뇌의 꿈틀거림이 아니라 커플
들의 인터뷰 내용과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연애초기 하루도 안 빠지
고 서로를 만나며, 수십만 원의 전화세도 마다하지 않고, 기념일이라고 선물과 함께
닭살 멘트 가득한 편지를 주고받던 그들은, 너 아니면 이세상은 아무 의미 없다는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그들은 100일도 채 되지 않아서 변해버렸다. 반 이상의 커
플은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성격차가 있더라고요. 덤덤해요..”

“그때는 마냥 좋기만 했었는데, 이젠 싸우고 트집 잡고 그래요”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요.”

  수십 가지의 이유들로 그들은 불타올랐던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합리화 했다. 하
소연 섞인 그들의 말투에는 문방구에서 호기심에 작은 장난감 하나 훔쳤던 걸 엄마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시인하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사랑이 실수였었다는 듯이
그런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거룩한 게 실제로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여기저기
들쑤셔 가며 괴롭히고 있는 애물단지 같은 거만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
도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추운 날에는 안추운척 하며 옷도 벗어줘
야 하고 자존심 다 버려가며 떠나가는 그대를 붙잡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젠장, 그
애물단지는 사회라는 장벽과 손잡고서 또 다른 방식의 장애물을 만들어 낸다. 이제
는 아주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한다.

  연애의 목적에서 하는 얘기는 이런 거다. 내가 말야 사랑 때문에 몇 번 아파봤는
데, 사랑? 젠장. 그 딴거 없어. 근데 말야 웃기는 게 뭔지 알아? 그렇게 아파해놓고
내가 또 사랑을 한단 말이지. 근데 더 웃기는 건 그것조차도 내 맘대로 못하게 한다
는 거야. 세상이 날 아주 등신을 만들더라니까?!

  술을 마시든 모텔을 가건 섹스를 하건 그건 그들 자유다.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생명체의 본능 아니던가.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그렇게 자유롭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 속에서 인생을 사는 이유까지 깨달아가며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동안 약혼자는 가슴을 치면서 슬퍼하고, 동료들은 이 새끼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하고, 제자들은 누구누구선생 정분났대 놀려대고, 학부모는
선생이란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삿대질 하며, 혹시라도 이야기가 언론이나 인
터넷에 공개라도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은 그 한 쌍의 사랑하는 연인을 ‘미친년놈들’
이라며 범죄자로 매도한다.

  뜨거운 사랑을 불태울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눈에 아양 떨며 진심어린 박수를
받을 것인가? 더럽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젠장..


-2005.8.24. 고백.
-2005.10.24.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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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dnek | 2007/01/27 15:24 | 필름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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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enzday at 2007/03/21 22:36
공감 공감 또 공감해요.
Commented by duddnek at 2007/03/22 00:51
^^
Commented at 2007/05/29 22: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5/30 00: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duddnek at 2007/11/20 14:29
까탈/ 좋은 사랑 만난지는 꽤 됬습니다^^;
Commented by duddnek at 2007/05/30 00:12
Commented by baltak at 2009/10/15 07:16
세상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대한 아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고 세상의 시선 탓으로 책임을 돌려보려는...
같은 것을 대하는 다른 시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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